대형 축제가 아닌, 소소한 진짜 축제를 찾다
사람들은 흔히 축제라고 하면 서울의 불꽃놀이 축제나 진해 군항제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대형 행사만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부터인가 그와는 조금 다른 축제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적이는 인파와 화려한 무대도 좋지만, 그 지역 고유의 정서와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규모 축제에서 더 깊은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몇 달간, 일부러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군 단위의 축제들을 직접 찾아다녀 보았습니다. 경북 청도, 전남 장흥, 강원 평창. 그렇게 찾아간 세 곳은 규모는 작지만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인상 깊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직접 다녀온 이 세 지역의 소규모 지역축제 탐방기를 생생한 후기 형식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경북 청도군 – 감말랭이 축제 체험기
감이 말라가는 냄새 속에서 시작된 하루
11월의 청도는 아직 완전히 겨울로 들어서기 전, 아침 공기에서 감의 단내가 배어 있는 시기였습니다. ‘청도 반건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그 감을 수확하고 말리는 현장을 본 사람은 많지 않죠. 저는 축제 첫날 오전 10시쯤, 청도읍 외곽의 작은 마을 회관에서 열린 감말랭이 축제장을 찾았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노랗게 익은 감들이 소쿠리에 담겨 줄지어 놓여 있었고, 할머니들 몇 분이 앉아 감 껍질을 벗기고 계셨습니다. 조용하고 소박한 그 풍경이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한 부스에서 감 깎기 체험을 신청했는데, 감을 깎는 칼은 예전 시골에서 쓰던 얇은 철제 주머니칼이었습니다. 어릴 적 외갓집에서 봤던 그 모습이 순간 떠올라, 혼자 웃으며 칼을 들었습니다.
할머니들과의 짧은 대화가 더 소중했던 시간
체험을 하던 중, 옆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손 조심혀~” 하시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손놀림은 얼마나 능숙하시던지, 감 하나를 깎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 하나를 깎는 데 2분은 걸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웃으셨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역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감을 깎고, 말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도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감말랭이 시식,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정성’의 맛
이후 준비된 시식 코너에서 반건시와 감말랭이를 맛보았는데, 솔직히 말해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습니다. 단맛이 강화되 인공적이지 않고, 씹는 감촉도 쫀득했습니다. 어르신 한 분은 “햇살 좋은 날 하루 반나절만 말려야 젤 맛있제” 하시며 감 말리는 타이밍까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식 후에는 작은 팩으로 포장된 감말랭이를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진짜 맛’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2. 전남 장흥군 – 정남진 표고버섯 축제 체험기
작은 산 속에서 열린 ‘표고의 날’
장흥은 개인적으로 처음 가 본 지역이었습니다. 그만큼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있었지만, 축제장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우려가 사라졌습니다. 축제는 비교적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위치한 작은 체험농장에서 진행되었는데, 표지판도 간소하고 안내도 거의 지역 주민들이 하시더군요. 입구에서 작은 바구니를 하나씩 나눠주었고, 곧바로 버섯 수확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표고버섯을 손수 따 본 생애 첫 경험
직접 수확하는 체험은 처음이었는데, 나무 원목에 줄지어 자라 있는 표고버섯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이게 그냥 마트에 파는 버섯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버섯은 생각보다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톡 하고 떨어졌고, 아이들도 정말 즐겁게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스태프 분들이 “머리 부분이 튀어나오고 윗면이 동그란 게 젤 맛있는 표고예요~” 하며 설명도 자세히 해 주셨습니다.
버섯으로 만든 즉석요리 시식
수확 체험 후에는 현장에서 바로 구운 표고버섯을 먹을 수 있는 시식존이 운영 중이었는데요, 버터를 살짝 두르고 소금만 뿌린 구운 표고버섯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버섯 안에 있던 육즙이 입안에서 터지면서, 고기보다 더 고기 같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옆에 계신 한 어르신은 “표고가 건강에도 좋고, 요즘은 가루 내서 먹는 사람들도 많아”라고 설명을 곁들여 주셨습니다.
3. 강원 평창군 – 메밀꽃 마을 음악축제 체험기
관광지보다 마을 잔치에 가까운 행사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에서 열린 소규모 음악 축제입니다. 흔히 평창 하면 ‘이효석 문화제’나 대형 메밀꽃 축제를 떠올리지만, 이 행사는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아주 소규모의 음악회였습니다. 사전 홍보도 거의 없고, 대부분이 입소문으로만 알고 찾아오는 형태였죠.
메밀꽃밭 한가운데에서 들려온 통기타 소리
축제가 열린 곳은 봉평 외곽의 작은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행사장이라고 해봐야 커다란 천막 하나와 무대용 나무팔렛 몇 개가 전부였지만, 그 소박함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첫 공연이 시작되었고 통기타를 든 청년이 등장해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관객은 30명 남짓이었지만, 모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메밀꽃이 살랑이는 가운데 들려오던 그 노래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지역 작가들의 전시와 플리마켓
한쪽에는 지역 주민들이 만든 수공예품과 마을 농산물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이 조용히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키운 메밀차와 메밀가루, 손수 만든 수세미와 비누를 구입했는데, 판매자 분들의 친절함과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전혀 강매하는 분위기가 아닌, 정말 이 마을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작지만 깊은 감동을 준 축제들
이번에 다녀온 세 군데의 소규모 축제는 대형 행사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로컬 감성’과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안겨주었습니다. 규모가 작고,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신선했고, 오히려 그 소박함이 방문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더군요. 특히 지역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먹거리와 공예품을 경험하면서 ‘축제’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연예인 섭외와 대형 무대가 없어도, 그 지역만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도 또 다른 군 단위의 숨겨진 축제를 찾아보고, 그 이야기를 공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